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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책리뷰] 방구석 미술관1 by 조원재

by 생각하는개발자 2021.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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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원재

읽은 날짜: 2021.11.03.Wed - 2021.11.12.Fri

쓰는 날짜: 2021.11.12 Fri @@cafe 

책 구입 링크 : 방구석 미술관 알라딘

score (out of 5) : ⭐⭐⭐ (3.5)

분명 저번주까지만 해도 아아마셨는데..

처음에 방구석 미술관2 한국편을 먼저 읽었던 터라, 솔직히 이번 1편도 기대가 꽤나 됬던 책이였다. 특히, 방구석 미술관2를 읽고, 굉장히 밑줄 친 부분도 많고, 읽으면서 운부분도 많아서, 이번 책에도 나에게 어떤 새로운 경험으로 기억될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방구석 미술관1은 솔직히, 인물들의 삶을 보면서 짜증과 불만이 솔직히 더 기억난다 (아니면, 의외로 그런 자극적인 부분들이 내 가치관에 부합되지 않기때문에, 그 내용들이 더 기억나고 짜증나는 걸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이번 책은 읽으면서 불만인 부분도 꽤나 있었고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움이 있던 책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미술을 잘 안좋아한다. 뭐랄까, 내가 보는 미술은 굉장히 그들만의 리그같은 모습이 굉장히 보인다. 그들만 알고 그들만이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 보인다고나 할까나. 그래서, 미술관을 가면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뭐랄까 그림을 보면 "도대체 이게 뭘까" 하고 그냥 그 자리에서 멈춘다고나 할까. 아니면 단순하게 "와 예쁘다~ 혹은, 별로다~" 라는 굉장히 단순한 추임새만 나오는게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책을 읽으면서 더욱더, 딱 2가지 생각으로 더욱 흑과백으로 나뉘어진 것 같다. 정말 미술 혹은 예술 그 자체를 사랑한 예술과와, 책임감은 없이 그저 예술이라는 달콤한 말로서 그들의 부도덕한 삶이 과연 이해받아야 하는지는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짜증난던 인물들>

디에고 리베라프라다 칼로의 관계는 가히 비가학적으로 들린다. 불륜으로 시작한 관계가, 누군가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본 장인들이, 그들의 미술들이 그들의 막장드라마 없었다면 탄생할 수 있었겠냐고 물어보는 작가마저, 솔직히 슬펐다. 내가 보기엔, 그들의 관계는 그 누구도 push하지 않은, 굉장히 그들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 삶에서 결국 내 고통이 미술로 승화되었으니, 나의 개인적인 삶은 그래도 된다.. 라니 글쎄 나는 그 부분에서는 감히 동의할 수 없다.

 

비슷하게, 비살리 칸딘스키가브리엘 뮌터의 삶도 위의 사람들과 비슷했다. 불륜이였고 행복한 듯 보였으나, 결국 그 끝은 파멸과 멸망이였다는것을. 아무리 예술적인 타고남이 있고 하더라도, 그렇게 깨끗하지 않은 관계들이 그리고 그들때문에 눈물 흘린 사람들의 눈물 또한, 결국 나한테 더 배로되어 돌아 온다고 당연코 말해주고 싶은 사람들이였다. "사랑" 이라는 아름다운 단어에, 그들의 예술을 담아 넣는 것도 솔직히 싫고, 그들의 관계가 정당시 되는것도 싫다.


에곤 실레가 순수한 예술가라는 작가의 설명에 솔직히 나는 징그러웠다. 그의 작품들을 보는데, 그냥 굉장히 불쾌하고 진짜 그냥 나체그림으로 밖에 안보인다. 자신의 성욕을 주체못해서, 그저 예술이라는 달콤하고 아름다운 단어로 그의 표현을 덮으려는 것으로 밖에 안보였다. 그렇게 그저 더 많은 누드모델과 작업을 하고 보고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그를, 나는 솔직히 예술가로서 안보인다. 게다가 성인도 안된 열일곱 소녀와 동거까지 하면서, 그는 자신은 소녀들을 그저 모델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성인이면, 적어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저 '나는 예술하는 사람이니깐 괜찮아' 라는 말도 안되는 말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예술이, 작품이 탄압되었다고 생각하다니, 나는 오히려 그의 말이 더 모순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의 삶과 작품을 읽는데, 나는 내내 불쾌하고 짜증났었다. 그저 '지성' 혹은 '순수함'이라고 포장하는 것이, 결국 그가 했던 행동들을 정당화하면서, '그렇기에 이런 멋진 예술이 나온거야' 라는 말도안되는 결론을 내는 챕터여서 더욱 읽기가 싫었다. 개성도 고유함도, 결국 그 모든 것에대한 책임을 따르지 않은 채, 달콤한 말로 그를 감싸는 것으로밖에 안보여서 읽는내리 불쾌하고 불편했다.

 

에두아르 마네도 <올림피아> 라는 유명한 작품을 그렸다고 해도, 글쎄 결국 사람은 내가 생각한걸 말하고 행동하고 표현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다보니, 결국 그가 성병에 걸리고 병세가 악해졌던것도, 결국은 그의 방탕한 삶이 있었기 때문이 아날까? 아니 도대체 왜이렇게 예술가들의 삶은 방탕하고 방탕한 것인가? 너무 싫다.


항상 빈센트 반 고흐의 유명한 작품 <밤의 카페 테라스>, <해바라기>를 읽다보면, 항상 들던 생각은 "노란색이 참 예쁘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쩜 고흐는 이렇게 노란색을 잘 잡고 표현했을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역시 우리가/내가 아는 유명한 작가들은 다들 문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그, 압생트 안에 있던 "튜존"이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고 정신착란과 간질발작까지 가지다니.. 결국은 그 자체가 그의 귀를 스스로 자르게 되는 아주 끔찍한 결과까지 만들어 냈다니.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왜 예술가들은 자신을 죽이면서 (마약/술/시가를 하거나 성에 중독되거나) 그 모습들이 나의 작품안에 들어나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걸까. 그들이 무언가에 중독되건 아니건 당연 그건 그들의 선택이기에 뭐라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결과물로 나온 예술작품마저, 그들의 중독이 타당하고 그 결과가 더 높은 예술을 만들었다면, 과연 그 뒤에 올 후세의 예술가들은 어떻게 예술을 해야하며, 결국 그들또한 알게모르게 앞선 발자취를 걸었던 선배들을 따라, 그 중독이라는 발을 들이게 되는게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더 긍정적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예술을 한 예술가들도 있을 것이고, 지금도 있을거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다만, 그들의 건강한 예술들이 더욱 알려지고 유명해져서, 뒤에 올 후배들도 더욱 긍정적이고 건강한 마음으로 예술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굳이 도덕적으로 스스로를 불구덩이에 던지지 않아도 (외도를 하거나, 성에 중독되거나, 마약/술/시가에 중독되거나) 충분히 아름답고 귀중한 예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공감하고 좋았던 작가들>

에드가 드가의 첫 작품 설명 <실내(강간)>을 읽었을때는, 정말 충격이고 동시에 짜증이 났다. 도대체 왜 이런 미술을 하는 걸까, 왜 이런 작품을 작품이라고 해야 하는걸까, 반항심이 더 생겼다. 하지만, 그 시대적인 background를 듣고, 더 디테일한 그 시대의 부르주아 사내들의 방탕함을 어쩌면 싫어했던 드가가, 누군가는 이 냉혹한 현실을 꼬집어주고 낱낱이 알려줄 수 있는 예술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브루주아 남성들에 의해 상처받는 하류층 여성들의 삶의 아픔을 "공감" 하면서, 그 민낯을 밝히려던 그의 예술적인 모습은 정말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신 조차도 그렇게 부유한 출생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예술적인 감각을 조금 더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는것이, 반대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지금 이 곳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나만의 예술적인 표현은 어떤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예술이라는것이, 단순히 2D혹은 3D자체로 표현되는 "그림" 만이 예술이 아니고, 말, 글, 움직임 그 모든 행위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어떤 예술을 하는 사람일까 라는 생각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풀 고갱의 삶은 읽는내리, 굉장히 현실적인 예술가로 생각되었다. 평범하게 증권맨으로서 삶을 살면서, 그저 미술작품을 제태크로만 생각하던 그가, 평일에는 회사를 열심히 다니고 주말이 되면은 파리 근교로 나가 그림을 그리다니! 그렇게 서서히 미술을 대하고 접하면서, 자신만의 또다른 즐거움을 찾는 그 자세가 나는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덕업일치인 삶이 참으로 좋겠지만 (왜냐면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이 일 자체니깐, 나의 24시간을 쏟아붙는것이 전혀 아깝게 느껴지지 않을 테니깐), 어쩌면 우리의 삶도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모르니깐 여정인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든다. 내가 좋아하는걸 먼저 찾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나의 일상을 만들어가고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나의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하고 살아가는 삶도 있으니깐. 그렇게 7-8년을 이중생활(?) 을 했던 고갱은, 결국 파리에서 인정받는 화가가 되었다니, 정말 자신의 일상을 지탱하고 지키면서, 동시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 집중했던 그의 삶이, 부러우면서 나는 과연 어떤 일상을 가지고 싶어할까? 내가 꿈꾸는 나의 예술을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동시에 이 책에서는 자세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과연 고갱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고뇌하고 고민했을까, 그리고 노력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그가 천재여서 혹은 타고나서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저 내가 좋아하니깐 알고싶으니깐 더욱 그림그리는것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노력하고 고뇌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자세히 설명되어있지 않은 오랜시간의 노력들이 나에게는 보여지는 것 같아서, 그저 그가 멋있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1882년 프랑스 불경기에 회사에서 짤리게 되지만, 오히려 그는 자신이 full time artist가 된다고 기뻤지만, 또한 현실을 다섯 아이를 먹여 살려하는 가장의 현실이였다. 그림은 안팔리고, 돈은 없어지고, 결국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하지만, 동시에 처절하게 그림을 그렸던 그가 참 대단하고 한편으로는, 과연 가족들 특히 자녀들을 그 시절을 힘들어서 어떻게 버텼을까, 과연 그는 괜찮은 아버지였을까 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동시에, 고갱이 스스로가 용기도 재능도 부족하다고 말한 부분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저 그의 고백은 오롯이 그림만이 자기삶을 지탱해준다고 했다.. 너무 현실적이고 슬퍼서, 마음이 아팠다. 비록 현실은 최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된말로 "존버"한 고갱의 그 끈기를 정말 높게 산다. 어쩌면 우리네 삶에서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은, 정말 죽을 것 같고 도망칠 곳 조차 없다고 생각되지만, 동시에 그 시절을 버텨내고 있는 사람이 결국 승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화려한 기술로서 그 순간을 혹은 시절을 지나갔다고 말하는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살아낼 수 있는 하루 하루를 살아낸 그들이 바로 박수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의 고갱의 사상, '비문명인이 되고 싶어서, 자신을 '야만인'이라고 불려지길 원했던 그의 업적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나는 굳이 문명을 벗어나 '원시와 야생이' 살아있는 곳에서만 자신이 느낀 태초의 순수함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명화를 통해 더욱 쾌적하고 안전한 시대에 살고 있는게, 현실이고 우리네 삶이 아닌가? 게다가 원주민의 삶을 살겠다는 이유로 13-14세 아이와 결혼까지 하다니, 막판에는 진짜 막장같고 그냥 또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퇴사후의 작품들이 더 유명하겠지만, 반면에 그림을 본 개인적인 나의 입장에서는, 그가 회사다니면서 그렸던 <파리 카르셀 거리, 화가의 가정>, 1881 혹은 <이젤을 앞에 둔 자화상>이 훨씬 안정적이고 예쁘게 보인다. 막판에 이렇게 어린아이와의 결혼을, 결혼이라고 말하는 것 조차도 역겨움이 있었다. 그냥 아름다운 예술을 하면 안되나? 인간적으로 도덕적인 선 안에서.. 제발 예술이라는 말로 그들의 삶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고싶다.


클로드 모네의 삶과 그림의 역사를 보는것도 재밌었다. 그의 삶도 개인적으로 마음이 찡했는데, 바로 그 조차도 자신의 그림은 쓸모가 없고, 명성도 기대하지 않고, 그 모든것이 그저 암담하고 자신은 여전히 빈털털이라고 고백했다. 좌절과 치욕 그리고 다시 좌절이 반복된다고 슬픈 고백을 했다. 10년이 넘는 기간을 열정을 다해서 그림에 몰두했지만, 결국엔 빚쟁이에 쫓겨 다니고, 너무 가난해 친구가 사용한 캔버스를 긁어내 그림을 그리고, 게다가 병든 아이를 치료할 돈 한푼도 없었던 모네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지게 아팠을까, 얼마나 많은 밤을 울부짖으며 견뎠을까. 지금와서야 그의 그림이 이름이 유명해졌지만, 그 시절을 견뎌내고 살아냈어야 했을 모네의 눈물젖은 밤들은 또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폴 세잔의 스토리도 읽으면서 재밌었고 공감이 갔다. '맨땅의 헤딩' 하듯이 독학을 한 사람이라니! 누군가의 도움없이 박물관에 가서 대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며, 기술적 노하우를 체득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내가 무언가를 하고자 하거나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면, 정말 어떻게던지 배우고 성장할 부분이 있구나 싶었다. 굳이 내가 지금 '대단한 스승'이 없어서 성장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림 그릴 화실' 이 없어서 그림을 못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아직 배우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많은 부분들의 부족함과 결함들이 설명되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같이 성장할 사람들도 만나게 되면서 그렇게 같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어쩌면 세잔은 내가 무얼 좋아하고 표현하고 싶어하는지를 그 긴 시간의 과정속에서 발견하고 성장했던것이 아닐까? 그렇게해서 "자연의 본질"을 표현하고 싶어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그 매순간 변하는 자연속에서의 변하지 않는 그 실체를 담으려고 했던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참 이 사람은 사물을, 자연을 보고 얼마나 많은 고민들과 고뇌들을 했을까 싶었다. 결국 그의 그림에서는 결국은 본질을 나타낼 수 있는, '조화와 균형을' 나타내기까지 하는 그의 예술에서, 얼마나 장인정신으로 자신이 정말 추구하는것 예술적임이 무엇인지를 얼마나 고민했고, 그걸 붓으로 표현하려 했을까 하는 고뇌마져 느껴졌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가 말했던, 정신적인 만족만이 자신이 줄 수 있는것이라고 고백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말한 부분이, 세잔이 겪었던 고민, 시도, 좌절 그 많은 순간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면서 자신만의 길을 계척하고 나아가고 통찰하려고 했다는것이 참으로 대단하고 철학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그가, 더욱 멋지고 겸손하게 보였던 이유는 바로 마지막에, 스스로가 자신은 자기가 생각한대로 발전하지도 못했고, 자신의 그림에는 여전히 부족함밖에 안보인다고 말하다니! 끝까지, 자신은 아직 다 발전하지 못했고 자연에 비해서 자신의 그림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자연의 본연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동시에 발전할 면모를 계속 찾고 고민했던 그의 삶의 태도가 너무 멋있고 본받고 싶어졌다. 과연 나는 어떤 부분을 더 발전하고 싶어하고, 어떤 본질을 찾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마르셀 뒤샹의 여러 말들이 인상적이였는데, 특히 그가 예술가만이 창조행위를 하는것이 아니라, 관객이 그 특성을 해독하고 해석함으로서, 그 창조적인 프로세스에 같이 있다는 말이 참 좋았다. 그의 작품에 떠나서, 솔직히 이 부분을 읽기 전까지 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그림들과 작가들의 더러운 사생활을 읽었을 때, '참 작품도 별로고 사상도 별로고 개인사는 더더욱 더럽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과연 나는 그런 그들의 작품을 나의 잣대로 판단하고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 라는 반대적인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렇게 느끼는데, 과연 내가 느끼는것을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것 혹은 그 예술가가 의도하지 않은 것이면 어떡하지 라는, 일종의 죄책감(?)도 있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결국은 관객인 나의 입장에서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결국, 그걸 바라보고 경험하고 있는 주체인 내가 충분히 느끼고 경험하고 해석해도 되는 부분이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면서 조금은 편안하게 마음을 내려놓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었다.

 


이 책에 대한 나의 감상평을 간결한 한줄로 정리하자면,

미래의 아름다운 작품들이, 이 세대를 정직하고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예술가들 그리고 우리들에게 위로와 응원이 되길 바란다.

끝내 오늘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밖에 없었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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