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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책리뷰] 단테의 신곡 La Divina Commedia 책 리뷰

by 생각하는개발자 2021.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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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알리기에리 단테 (Durante degli Aligheri

읽은 날짜: 2021.05.30.Sun - 2021.06.01.Tue

쓰는 날짜: 2021.05.02.Wed 맑음

책 구입 링크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6016075&start=slayer

 

단테의 신곡

단테의 인간적 고뇌와 슬픔, 사랑, 희망 등이 작품 전반에 걸쳐 녹아 있어 문학사에서도 빛나는 수작 <신곡>. 이 책은 단테의 방대한 원작을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전방위 아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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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전중에 고전이라고 익히 들었고, 특히 문가영 배우가 추천해서, 도대체 얼마만큼의 책이기에 이토록 칭찬하는걸까 라고 궁금하기도 했다. 마침 잠자기전에, 내가 한 책을 다 읽었고, 아직은 책장에 새로 읽고싶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산 책들이 있었기에, 굉장히 설레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으로 다가갔고, 이책 저책 옮겨 다니면서 무슨 책을 먼저 읽을까 - 하는 정말 설레임도 있었다. 일요일밤이고, 내일은 월요일 이지만, 회사를 안가도 되고, oncall (당직)은 곧 끝나 가니 깐 이런저런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몇몇 책들을 넘기다가 그 다음으로 집은 책 이였다.

 

가벼운마음으로, 그 전에 잠깐 펼쳐보았던 책들처럼 가벼운마음으로 몇페이지를 읽다가, 그만 책에 완전히 완전 몰두되어버렸고, 책장앞에, 그 차가운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서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상태로 그 책을 새벽에 읽게되었다. 불과, 토요일까지만 해도 전화기를 붙잡으며 엄마하고 회사는 안맞는것 같고, 일은 너무 힘들고 내가 답답답해서 지치고 또 지친 상태라고, 바로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고싶다고 했던 그 상황이였는데, 그동안 내가 기독교, 크리스천이라고 말만 하면서, 실제로는 잊고있었던, 이 세상 후의 세계가 그려졌다. 내가 읽은 단테의 신곡은 굉장히 철학적이였고, 죽음 이후의 세계이지만 완전히 뼈를 때리는 이야기들이였다. 그냥 넋을 읽고 책장을 넘기게 되었고, 그러면서 다시한번 나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 라는 꽤 오랜시간동안 내 스스로에게 던지지 못했던 (일이 너무 바빠서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다 보니.. )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다. 그래서 졸음이 쏟아지면서도 그 뒤가 궁금해서 더 읽고싶어졌고 읽다보니 더욱더 내 삶 안에서의 질문들을 던지게 해 주었다. 정말 철학적이면서 왜 고전은 명작이고, 그 글이 왜 지금까지도 명성이 있는지 너무 알겠었다. 역시 글안에 삶이 있고, 삶이 결국 글로 나타낼 수 있다는 통찰을 갖게 된다!

 

 

단테의 신곡은 3 편으로 이루어졌다 : Infero (지옥편), Purgatorio (연옥편), Paradiso (천국편). 특히 지옥편은 굉장히 심오하고 어둡고 굉장히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고, 연옥편은 어쩌면 내가 잘 인지하지 못했던 죄의 모습들 조차도 실은 죄였다고 거울처럼 비춰주는 부분이였고, 천국편은 솔직히 너무 다 모호하게 표현되있고 묘사되있어서 아무리 상상을 하려해도 상상이 쉽사리 되지 않았던, 그치만 그 아름답고 존귀함만큼은 조금이나마 느껴졌던 글들이였다.

첫 지옥편에, 단테는 낯선 곳으로 지옥을 가기전 떨어졌고, 그곳에서 "베르길리우스" 를 만난다. 그 때 단테는 "너무 불안해서 나는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라고 했다. 그랬더니 베르길리우스가 그랬다, 인간은 겁을 먹고 나약한 존재라고.. 와 이부분을 읽는데 딱 내 모습같았다. 회사에 가기전, 딱 내 모습. 두렵고 불안하고 지금 현재를 걱정하고 즐기지 못하고 있는, 아주 떨고있는 그런 한 작은 생명. 하지만, 내가 잊은거였다. 인간은 여전히 나약하고 겁많은 존재이라는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명예와 존귀의 자리로 부르셨고, 부르시고 있고, 부르실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그 십자가를 잊어버린 나의 모습이, 다시한번 나는 연약한 인간이라고 누군가 외치는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라, "쓸데없는 걱정은 그대의 앞길을 가로막을 따름이라네" 라고 하는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나는 얼마나 인간적으로 "쓸데없이" 앞서가고 있는가. 냉철하게 지금을 바라볼 수 없는 존재이구나 싶었다.

연옥편에서는, 단테가 갑자기 같이 동행하던 베르길리우스에게는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란다. 그러면서 베르길리우스가 말하기를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논리를 넘어서 두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 그대로, 그 본연을 봐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이 세상의 조그마한 이치를 알려주는 듯이 들렸고, 동시에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증명하는 문장처럼 네겐 들렸다. 그림자가 있고 말고 (즉, 그 실체가 있고 말고) 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논리를 넘어서 보는 시각 (마음의 시각, 즉 믿음) 또한 중요하다고 말해주는것 같았다. 단지, 눈으로 (즉 육체적으로) 보이는것만이 모두 받아들여지는 논리적인 말들이 아니라, 자연의 경치를 바라보듯이, 그 불가사의를 자연, 마음에 비치는 (즉 영의 눈으로, 그리고 예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것이) 얼마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고 필요한지를 다시한번 알려주는 부분이였다. 동시에 또한 나는, 얼마나 이 눈에 보이는것을 보고 있는가 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회사의 네임, 회사의 직분 (타이틀), 연봉, 내가 나온 학교, 학과, 등등 - 내 스스로는 그것들을 자랑한다고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찌보면 내 스스로도 그 타이틀을 보고, 그 눈에 보이는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던것 같다. 그 안에서 내가 얻은 경험 가치를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내 통장으로 들어오는 월급과 내 스스로의 직업의 타이틀을 스스로자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노력의 결과는 개인적으로 대단한거지만, 나 스스로도 안다. 이 모든것들은 내가 이룬게 아니고, 주께서 그저 허락하신 시간과 때라는 것을.. 하지만 얼마나 인간 스스로가 나약한가? 그것을 모르고 그 그림자만 쫓아가고 있는 신세라니..

 

또한 연옥편에서 단테는 "벨라콰" 라는 아는 지인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그 관중속을 지날때에, 그는 마음속으로 이곳에 또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건 아닐까 마음이 불안해지고 두려워한다. 그러던 중에, 스승이 그 모든걸 간파한 듯이, 마음이 왜그렇게 어지러운지, 보야아할 것을 보고 듣지 말아야 할 걸 더 구별하라고 한다. 난 또 이부분을 읽으면서 " 와.. 이게 삶의 태도가 되어야 되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냥 아주 머리를 쎄게 한대 맞은 기분이였다. 연옥을 지나는 단테 뿐만이 아니라, 이 어지럽고 무질서한 세상을 살아가는 나 조차도, 만약 누군가 내 마음을 열 수만 있다면, 누구도 당연히 "Hey, 왜 그리 마음이 어지러운가" 라고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말소리를 들으려 하고, 보아야 할 것, 보지 말아야 할 것, 들어야 할 것, 듣지 말아야 할 것을 과연 나는 제대로 구분하고 구별하며 살아가고 있었나, 반성하게 되었다. 물론, 이 말이 스스로를 항상 검열하라, 라는 뜻으로 나에게 다가오진 않았다.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하라는 말로 나는 들렸다. 때로는 누군가가 하는 말을 귀기울이지 말고, 성령님의 말을 들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세상이 속삭이는 거짓된것들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주신 말씀을 붙잡아야 할 때도 있고.. 또한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 반석을 붙잡아야 할 때도 있는것 처럼, 나에게 이 부분은 "도대체, 너의 마음은 왜리리 어지럽니? 너는 어떤 말을 듣고 귀기울이고 살고 있니? 너의 하루하루 매일매일은 과연 어떤 삶의 모습들로 이루어져 있니?" 라고 물어보는 것만 같았다.

 

 

또 다른 연옥 부분 중에서, 마음에 남았던 부분은 마르코를 만났을때다. 그 지옥한 안개속에서 단테는 마르코에게 묻는다, 왜 세상은 혼란하고 도의도 이성도 사라지고, 오히려 악이 번성하고, 왜 이런 세상이 되었고,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라면, 또는 신이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면 왜 이런지 등등.. 그랬더니, 마르코는 깊은 한숨을 내쉰후 말한다,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은 연기가 가득하고, 그 이유를 알건 말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본모습을 빛으로 삼고 자신의 힘을 만들어 간다면, 그것이 자유가 아니겠냐고 말한다. 정말 큰 인생의 깨달음 아닌가? 내가 감히, 그 모든 세상의 이치를 알 수도 없으면서, 나약한 인간인 내 스스로는 또 다시 "왜" 라며 하나님께 울부짖는다. 그치만, 마르코가 말한것처럼, 이유를 알면 뭐하겠는가? 이유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은 그 탓을 돌릴 "누군가" 를 찾고 있었을 뿐 아니였을까 라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 모든 이치와 이유를 아는 분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뿐이시고, 그분이 내 삶의 역사의 주인이시고 이 세상의 주인이시라는 아주 명확하고도 분명한 사실을, 어쩌면 나의 하루하루 고단한 삶에만 집중하느라 시야는 좁아졌기에, 성경처럼 "주의 나라와 주의 뜻을 구하는 (Seek His Kingdom and will)" 를 구하는 삶이 젼혀 아니였음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정말 구절을 읽으면서 많이 찔렸다. 주께서 주신 자유함을 나는 과연 누리고 살고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가 옥죄이면서 살아가고 있었던것은 아니였는가, 다시한번 머리를 맞은것 처럼, 누군가 나에게 "정신차렷!" 라고 외쳐주는 것만 같았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오히려 감사했다. 내가 큰 일을 하는게 아니라, 그냥 주어진 삶을 살아내고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 또한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계획과 꿈이 있다는 그 사실이,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은밀한 비밀까지도, 내가 저 천국에서 주님 만나면 다 그 휘장이 걷어지고 그 질문들이 다 대답되어 질 것이라는, 그 위로함의 깊이가 이 구절을 통해서 흘러 들어오는것만 같았다.

 

 

그리고 연옥에서 생각나는 마지막 부분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길가면서 예전에는 교황이였던 남자가 얼굴을 땅에 묻고 빨리 가라고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면서 나눈 대화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위를 구하려는 탐욕때문에 받는 벌을 보고선 정말 수가 많다고 단테는 말한다. 그러자 베르길리우스는 야망이란 점점 부풀어 오르고, 물질이란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지고, 인간의 욕망은 끝없이 나오고 자신을 결국은 가난하게 만든다고 한다.

참으로 Youtube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화장품, 향수, 가방을 갖고 "소유" 하고 있는지를 자랑한다. 또한 자신이 얼마나 "잘난" 사람인지를 말하는 컨텐츠와 정보 자랑이 마구마구 넘쳐나고 넘쳐 난다. 하지만, "소유" 자체가 잘못이라기 보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되고, 거기다 더해지는 많은 야먕들이 더해진다면, 결국 그 구렁텅이로 빠지는건, 그 누구도 아닌 자신 스스로라는 사실이 참으로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특히나, 더 이 부분이 성경 구절을 떠올리게 했다. "죄가 사망을 낳고 .. "하는 그 구절. 결국, 선하지 않음으로 나오는 욕심과 탐욕과 야망은,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얽메이게 하고 옭아메는구나 하고 다시한번 느껴졌다. 과연 나는 물질을 어떤 모습과 태도로 바라보고 있는가, 질문하기도 하고..

 

 

마지막 천국 편에서는,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보고 그 아름다움의 빛을 보며 "불멸" 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러고는 오래 품어온 의문을 말한다. 모든 형태는 순간적이고 헛된것이지만, 주가 그모든걸 다스리시고 그 본질들은 사라지지 않으니, 우리네 삶의 모습이 결국은 하나의 반사에 지나지 않는 실체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구절이라고 생각 되었고, 동시에 솔로몬이 죽기전에 썼던 "전도서" 가 생각났다. 그 책에서 솔로몬은 "모든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라고 한다. 그 많은 명예와 영광과, 돈, 여자, 지위, 등등 그 모든 것을 누리고 가졌던 솔로몬은, 결국 나중에 그의 삶을 되돌아 보았을때, 그것들은 모두 그저 한 순간 흩어지는 헛된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래도 감사한것은, 이 유한한 세상속에 (그 끝이 모든것에 있는 세상) 하나님은 그 존재들을 돌보시고 지키시고 보호 하신다는 것을. 그렇기에 우리가 의미를 찾고 살아갈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을. 그 자체로도 참으로 감사하고 감동 이였다. 과연, 우리가 이 세상의 이치를 알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삶에 일어나는 일 들 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고, 내가 해결 할 수 있는것이 없다는 무기력 함이 드는 삶인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여전히 선하시고 그의 이치와 섭리안에서 나를 그리고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그 사실이 참으로 감격스럽고 감사하다.

 

 

지옥과, 연옥과, 그리고 천국을 보면서 이런죄 저런죄 이런기쁨 그 모든것을 짧게 나도 같이 지나온 기분 이였다. 솔직히, 나에게 딱 필요했던 타이밍의 책 이였고, 그랬었기에 나에겐 엄청난 위로와 힘이 되어준 책 이였다. 내 하루하루가 도대체 왜이리 고난 한 건지, 왜이리 버거 운 건지, 마음은 편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무서워하게 되었는지, 등등 내가 도저히 답을 내릴 수 없는 삶 속에서, 이 책은 다시한번 나에게 "정신차려" 라고 하는 책 이였다. 지금 살아내고 있는 삶은, 너무너무나도 짧고 찰라 순간이며, 지금 으로의 60-70 년 인생이 아닌, 과연 나의 하루하루는 저 천국과 지옥이 실제 한다고 믿고 사는, 믿음의 자녀로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다시한번 일깨워주었다. 과연 나는 더 사랑한다고 말했나, 과연 나는 더 사랑을 표현 했는가, 과연 나는 더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얘기 했는가, 과연 나는 진심으로 다했는가... 등등, 정말 내가 잊고 지나온 것들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 책 이여서 너무 이 책을 읽게 하신 주께 감사드린다. 참 나를 잘 아시고, 어떻게 위로까지 이렇게 완벽하게 하시는지, 그분의 섭리와 사랑에 다시한번 또 깜작 놀라고 감사한다. 이렇게 나약하고 어리석을 자를, 책으로도 위로하시는 하나님 이라니! 참 이렇게 길게 독후감 (?) 책 리뷰를 쓸 수 있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자유를 주심또한 그저 감사 또 감사합니다. 이 감사함이 부디 오래가길 !

빨리 한국가서 이렇게 서점에서 책 읽고 싶다 @Index - 건대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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